달칵. 재봉틀이 수를 놓는 소리가 고요한 공방 안을 울린다. 청의 라이더는 ‘출입금지’라고 쓰인 방 앞의 푯말을 바라보며 그 너머에서 울리는 옷감들의 향연을 머릿속으로 그려낸다. 그와 야반도주를 한 지도 어느새 일주일이 되어가던 즈음, 이브는 무엇을 생각했는지 공방을 열겠노라 선언했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니까요. 자신이 지닌 재보 몇 가지를 팔아넘기고, 영령으로서의 힘을 조금만 사용해도 재물에 대한 걱정은 없으리라 생각했음에도 이브는 한사코 공방을 준비하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가 바란다면 자신은 그저 거둘 뿐이다. 그런 생각과 함께 청의 라이더는 공방의 오픈 준비를 도왔다. 그럴싸한 가게를 찾고, 내부의 기구들을 꾸미는 그 모든 시간 사이에서 청의 라이더는 이브의 이전 공방에서 물건들을 빼돌리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야 그의 손때가 탄 물건들을 그곳에 두고 오는 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무엇보다 장인에게 필요한 것이 자기 손에 맞는 물품들임을 모르지 않았으므로 라이더는 베티아 가의 눈을 피해 온갖 기구를 들고 날랐다. 물론 그가 다루던 물건들을 멋대로 가져와 그의 눈앞에 들이밀던 순간 드물게 동그래진 시선이 마음에 들었다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았다.

영령이라는 건, 참으로 편리하구나. 마치 신선이었던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인간의 눈에 띄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노라면 아주 먼 과거의 기억이 불쑥 고개를 드민다. 인간의 시간은 자신에게 무의미하다는 걸 알고 있기에 더욱 기이한 감각이 드는지도 모른다. 그야, 누군가에게는 수천 년 전의 일이라 묘사되는 자신의 과거는 불과 엊그제의 일이기도 하니. 이러나저러나, 이브는 공방이 열린 이후로 손님을 받을 때가 아니면 작업실에 틀어박혀 나오질 않고 살았다. 퇴근을 한 이후에는 장을 보거나 주변의 공원을 돌아다니는 경우도 종종 있었으나 작업을 하는 시간만큼은 무엇이 그리도 중요한지 가끔 식사를 하는 것도 까먹고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청의 라이더는 작업에 몰두한 장인의 모습을 셀 수 없이 보아왔다. 과거에는 더욱 장인에게 요구되는 시간이 길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때문에 이브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밥은 먹어주었으면 했으므로, 간간이 식사를 방문 앞에 두고 고양이가 먹이를 먹는 걸 지켜보는 주인이 된 심정으로 몰래 그 앞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의 작업실 안으로 발을 들인 적은 존재하지 않았다.

장인에게 있어서 자신의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모르는 바가 아니었으므로 청의 라이더에게 있어서 그 공간은 미지이자 금기의 공간이라 불려도 이상한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언제나처럼 식사를 가져다 두기 위해 문 앞에 다가간 순간, 불쑥 문이 열리더니 자신을 바라보는 이브의 낯 위로 답지 않게 당황한 사유는 최대한 내부를 보지 않기 위함이기도 했다.

“아, 마스터. 오늘은-,”

“들어오시겠어요? 보여드릴 게 완성되었거든요.”

오늘 점심은 파스타를 했다고, 그렇게 말하려던 목소리가 뚝 끊어진다. 청의 라이더는 정말로 자신이 저 안으로 들어가도 괜찮은지를 빠르게 가늠한다. 하지만 공간의 주인 되는 자가 직접 들어와도 좋다는 허락을, 아니, 허락보다는 초대에 가까운 이야기를 뱉어낸 이상 그것을 무시하는 것도 예의는 아닐 터다. 무엇보다 그가 보여주고 싶다는 그 대상이 궁금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였으므로 여인은 천천히 발을 옮기며 안으로 들어섰다. 크게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공간. 천과 실 따위가 어지러이 놓여있는 공간 안에서 마네킹에 입혀진 드레스가 두 벌 존재했다. 드레스? 정확하게 말하자면 원피스에 가까운 형상이긴 하였으나 어느 쪽이든 청의 라이더에게는 그리 익숙한 형상이 아니었다. 이 시대의 옷은, 그리고 이브가 만드는 옷은 자신에게는 그저 지식으로만 존재하는 계통의 부류가 많았기에 그것을 실제 눈으로 마주하는 것을 일종의 충격을 가했다. 분명하게도 아름다웠고,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이 분명한 한 쌍의 원피스는 순백의 형상인 탓에 얼핏 보자면 신선들이 입는 옷을 연상시키는 바가 있었다. 그래서, 청의 라이더는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 이것은.

“당신의 치수를 눈대중으로 보고 맞추어서 사이즈를 조금 조정해야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아마 맞을 거랍니다.”

나를 위한 옷이구나. 옷에 매달린 꽃 모양의 장식들을 바라보던 청의 라이더는 홀린 듯 손을 뻗어 노란색의 꽃과 하늘색의 꽃을 바라본다. 이 시대의 인간들이 꽃에 다양한 의미를 부여함을 알고 있다. 제 마스터의 생일 정도는 알고 있는 쪽이 예의겠다 싶어 물망초의 꽃말 정도는 알고 있다. 나를 잊지 말아 달라는 그 애원. 인간은 어째서 누군가에게 기록되기를 바라는가. 기억이란 결국 스러지기에 한때에 가치 있는 것임에도. 그러나 이 순간, 그는 그들의 소망을 이해한다. 누군가에게 기록되어 이리 남게 된다면, 인간들은 분명하게도 자신의 자취를 남기고자 타인에게 손을 뻗을 터였다. 이제 와 인간의 감각을 이해하다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지. 꽃장식을 매만지던 손길이 옆으로 향한다. 자신의 것보다는 조금 작은, 그러나 한없이 화려한 옷 위에 얹힌 노란색의 꽃장식. 이것은 무슨 꽃일까. 꽃을 보는 눈 따위는 없는지라, 마치 정답을 기다리듯 이브를 바라보면 그는 조금 뒤에야 말을 이어나간다.

“메쉬 메리골드, 라는 꽃이랍니다. 당신에게 이 시간대의 생일이나 이름은 아직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직접 드리고 싶었어요. 1월 30일. 당신에게 반드시 행복이 찾아오기를 바라면서….”

“내, 행복?”

하지만 이 순간 행복해져야 하는 건 내가 아닌 네가 아니느냐고, 그리 되물으려던 이는 일순간 사실 하나를 깨닫는다. 누군가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과거에도, 이 시간대에도 다르지 않다. 그러니 그가 자신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있지 마스터. 아니, 이브. 내가 이 시대에서 행복을 찾게 된다면 그건 단 하나뿐일 거야.”

순백의 원피스를 들어올린 채로, 여인은 웃는다. 한때 자신의 반려였던 이에게 웃어보였듯이. 눈앞의 이가 행복하기를 바라며. 그것만이 소망인 채로 살아가는 법을 다시금 주워삼킨 채로. 나를 이 세상에 남도록 만든 것은 그대가 유일하니, 오롯이 그대를 위해 살아가는 법만을 알 것이다.

나는 너를 잊지 않겠다는 염원으로 몸에 물망초를 두르고, 메리골드로써 피어나 너의 행복이 될 터이므로. 옷의 치수 정도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터였다. 그야 그의 눈썰미가 얼마나 좋은지, 하여 얼마나 좋은 장인으로서 자리매김 하는지는 자신이 잘 알고 있지 않았던가. 영령으로서 그가 해준 옷을 입는 호사를 거느리는 것에 감사를 표하려던 청의 라이더는 이브가 뒤이어 내민 서류 한 장을 바라보며 시선을 내린다. 무슨 옷감이 들어갔는지, 그런 설명서라도 되는 것일까. 그 외에는 마땅하게 자신에게 내줄 것이 없다 여긴 청의 라이더는 머지 않아 이 서류가 현대에서 읊어내는 ‘신분 확인서’에 가깝다는 것을 인지한다. 생일은 1월 30일. 자신의 것이라면 당연하게도 고댓적의 옛 이름이 쓰여있어야 하는 곳에는 영문으로 된 글자가 적혀있어서, 청의 라이더는 그것을 곱씹으며 이 글씨 몇 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리기 위해 한참을 고민하여야 했다.

“당신의 새 이름이에요. 과거의 이름을 계속해서 쓸 수는 없으니까요.”

엘피다. 비로소 혀끝에 얹힌 단어 하나가 두 가지의 꽃과 얽혀 뿌리를 내린다. 이것은 소망이며 염원이다. 모든 인간은 자신이 바라는 소원을 하늘에 빌며 이뤄내길 바라니, 자신의 마스터는 어쩌면 더는 성배조차 필요치 않은, 평범한 인간의 소원을 빌고자 자신에게 목소리를 올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당신은 여전히 나의 마스터이니까. 나의 ‘주인’이 그것을 원하신다면, 나는 당신의 희망으로써 당신을 기억하고, 영원한 행복을 네 손에 얹어낼게. 너의 엘피다로써. 그리고, 이브의 메리골드로써.”

이것은 아주 오래 전, 자신의 행복을 이루지 못한 어느 영웅이 자신의 행복을 얻을 기회를 부여받은 이야기. 그리하여, 두 갈래의 꽃을 피운 희망이 봄을 맞이한다.